한국인의 밥상.E669.240815 > 매회) 시사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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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5 21:17
주어진 고난 속에서 스스로 강인한 삶을 선택한
독립운동가문의 여인들.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며느리가 아닌
여성독립투사로 살아온 그녀들의 전쟁 같은 삶과 밥상
엄혹한 시대에도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쉼 없이 싸운 독립투사들.
그 영웅들의 뒤에는 그들을 뒷바라지하고 가족과 공동체를 결속시켜온 여인
들이 있었다. 독립운동은 칼과 총으로만 한 게 아니었다. 일제의 감시와 탄
압을 견디는 매 순간이 전쟁이었고, 독립운동 가문의 여인들은 때로는 강인
하고,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눈물겹게 희생하고 헌신했다. 기꺼이 내 가
족, 내 나라를 위해 그녀들만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 일상의 매 순간이
전쟁터만큼이나 치열했던 그녀들의 삶과 밥상을 만난다.
■ 독립운동가문을 지킨 며느리, 손응교 :
17살에 심산 김창숙의 며느리가 된 손응교씨. 심산 김창숙은 조선의 마지막 선비라 불렸던 유림의 거두로 독립선언문에 유림이 빠진 것을 치욕스럽게 여겼다. 이후 그는 ‘나라를 구하지 않는 자는 거짓 선비’라며 전국 유생들에게 서명을 받은 독립 청원서를 들고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손응교씨가 결혼한 당시 시아버지인 심산 김창숙은 6년째 옥살이 중이었다. 조선을 착취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의사에게 자금을 댄 혐의로 1927년 중국 상하이에서 체포, 14년형을 선고받았다. 손응교씨가 결혼한 다음 해, 김창숙 지사는 모진 고문에 두 다리가 마비된 채 풀려났다. 18살의 어린 며느리는 그때부터 시아버지 곁을 지키며 똥오줌을 받아내는 등 온갖 뒷수발을 드는 한편, 시아버지의 독립운동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김창숙 지사의 손녀이자 손응교씨의 딸인 김주씨가 어머니의 애달픈 삶이 담긴 밥상을 차린다. 결혼 석 달 만에야 어렵게 일제로부터 가족 면회를 허락받은 어머니 손응교씨가 폐백 겸 옥바라지 음식으로 준비한 도토리묵. 하지만 이 도토리묵은 끝내 시아버지에게 전하지 못했다. 일제 간수들이 도토리묵 속에 밀서라도 들었을까 봐 묵을 쑤셔댔기 때문이다. 혹독한 옥살이로 몸이 쇠약해져 소화마저 힘든 시아버지를 위해 매일 만들었다는 칼국수. 시아버지의 건강 회복을 위해 삯바느질을 해가며 차려냈다는 육회 등. 시아버지를 잘 지키는 것이 집안과 나라를 위한 길이라 여겼던 손응교씨의 독립운동 밥상이 눈물겹다.
■ 최초의 여성 광복군 지복영 지사 :
지복영 지사는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딸이다. 지청천 장군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최초의 조선인 중 한 명이지만 일본군을 탈출 해 서간도로 건너가 독립군에 합류한 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 참여했다. 지청천 장군의 망명으로 가족들은 일제의 혹독한 감시를 견디다 못해 만주로 갔다. 이역만리에서 독립군 가족의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지복영 지사의 딸 이모현씨 남매가 치열했던 어머니의 삶을 밥상에 올린다.
만주에 있던 시절, 먹을 게 없어 중국인 농부들이 버린 썩은 조를 주워 죽을 끓여 먹었다는 어머니 지복영 지사의 아픔이 담긴 조밥. 당시 만주에서는 중국인에게서 조 한말을 빌려 먹었다가 갚지 못해 딸을 빼앗기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나라 없는 설움을 느끼며 독립의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단다. 일제가 본격적으로 만주에 진격한 만주 사변 이후, 독립군 가족들은 무차별적인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 산으로 도망을 다니며 먹었다는 삶은 옥수수. 독립군 가족에게 도피와 유랑은 삶 그 자체였다. 그 시절의 지복영 지사의 버팀목은 어머니 윤용자씨. 독립운동하느라 집안을 돌보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땅을 일궈 농사를 지어가며 세 자녀를 홀로 키운 심지가 굳은 여성이었다. 외할머니의 추억이 중국식 말이 만두를 통해 되살아난다. 1932년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일제를 향해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더욱 거세진 일제의 탄압 때문에 중국 전역을 떠돌아야 했던 임시정부와 독립군. 1940년 충칭에 도착한 뒤, 마침내 임시정부의 정규 군대인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스물한 살의 지복영 지사는 독립운동에 남녀가 따로 없다며 광복군에 입대한다. 최초의 여성 광복군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여군이다. 그 시절, 동료 광복군들과 결기를 다지며 먹었던 생선조림. 지청천 장군의 딸에서 스스로 강인한 독립투사가 된 지복영 지사의 치열했던 싸움을 밥상에서 만나본다.
■ 안중근 의사의 얼굴 없는 여동생 안성녀 :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저격함으로써 조선 침략의 부당함을 세계만방에 알린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일제 36년간 지속된 항일 투쟁의 씨앗이 되었다. 안중근 가문에서도 16명이 독립지사가 나왔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의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여동생이 있다. 두 살 아래의 여동생 안성녀씨. 부산에 사는 후손들은 아직도 안성녀 할머니로부터 전해지는 밥상을 지키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항일 투쟁을 하던 시절, 안성녀씨도 남편과 함께 하얼빈에서 양복점을 하며 독립군 군복을 만들고 밀서와 독립 자금을 전달하는 등 독립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 시절부터 만주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끼니로 만들어 먹었다는 안성녀 할머니의 만두. 빚는 방법이 독특한데, 양손으로 한 번만 꾹 누르면 끝이다. 일제 경찰에 쫓기며 황망하게 살아온 흔적이 아닌가 싶단다.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이란 이유로 일제로부터 고문과 감시 등 숱한 고초를 겪었다는 안성녀씨. 안중근 의사의 의거 이후에는 일제 경찰을 피해 중국의 동북 3성을 떠돌며 살았다. 그 시절 값싼 돼지 뼈로 국물을 낸 뒤 콩을 갈아 넣어 비지 국을 끓여 먹으면서도 며느리와 함께 계속 독립군의 군복을 지었다고 한다. 독립군에게 군복은 조국의 상징이고, 독립을 향한 열망과 자부심이었다. 독립 영웅의 여동생으로 고난 속에서 강인한 삶을 살았던 안성녀씨의 눈물겨운 한 끼 한 끼는 여전히 후손들의 밥상 위에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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