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E667.240718 > 매회) 시사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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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8 21:35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도
꼿꼿하게 절개를 지키던 선비처럼
옛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곳, 영주.
물 좋고 공기 좋은 영주는
오랫동안 재래콩인 ‘부석태’의 명맥을 이어왔고,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메밀을 이용한 음식이 발전했다.
오래된 풍경만큼 세월의 깊이가 남아있는 영주의 음식들
귀한 맛의 유산이 되어 전해오는 영주의 식문화 속에서
오래될수록 더 깊어지고, 새로워지는 의미를 발견한다.
■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 추억의 맛이 흐른다 – 경상북도 영주시 관사골 :
경상북도 최북단, 소백산 자락에 안기듯 자리 잡은 영주. 오랜 전통시장 골목을 차지한 주인공은 바로 문어다. 문어는 영주의 잔칫상과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오른다는데, 어떻게 이 깊은 산간 내륙지역에서 문어 음식이 발달했을까?
그 중심에 영주역이 있다. 1942년 개통한 영주역은 중앙선, 영동선, 경북선이 만나는 곳으로 동해의 문어가 열차에 실려 영주역으로 모여들었던 것, 수많은 산물과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크고 작은 장이 섰고, 골목마다 가게가 생겨났다.
1973년, 영주역이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지금은 터만 남은 옛 영주역 인근에는 그 시절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관사골이 있다. 역무원이 생활하던 관사가 들어서고, 관사촌 주변으로 돈을 벌기 위해 모여든 가난한 사람들이 산자락에 자리를 잡으면서 마을이 생겼다. 50여 년 마을 사람들의 머리 손질을 하던 살아온 이발소도, 장날이면 10미터가 넘는 긴 줄이 섰다는 오래된 기름집까지, 옛 영주역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관사골.
가파르고 좁은 흙길을 오르내리며 살던 관사골마을 사람들. 석탄을 실은 기차가 지나가면 선로에 떨어진 석탄 부스러기를 주워 불을 때서 국을 끓이고 밥을 해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마을 떡방에선 여름이면 쌀가루에 막걸리를 넣고 발효시킨 기지떡(증편)을 만들고, 끼니 겸 간식 겸 만들어 먹던 호박범벅과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던 배추전, 복날이면 동네 사람 모두 모여 부추를 고춧가루에 버무려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여 먹던 닭개장까지, 힘들고 고단했지만 좋은 이웃들과 지난날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사는 관사골 사람들의 오래된 밥상을 만난다.
■ 고난을 딛고 태평성대를 꿈꾸다, 메밀묵과 태평초 –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
영주에는 오래된 메밀묵집들이 많다. 영주동에 자리 잡은 한 메밀묵 노포도 55년째 메밀을 직접 갈아 묵을 쑤고 있다. 아들과 딸까지 2대째 옛 방식 그대로 메밀묵을 쑤고 있는 이 노포의 대표 음식은 메밀묵밥. 메밀묵을 썰어 그릇에 담고 김치, 오이 등 고명을 얹어 육수를 부어 만드는 메밀묵밥과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을 품은 메밀묵에는 영주의 아픈 역사가 숨어있다.
조선 세조 때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실패로 돌아간 정축지변(丁丑之變)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그 피가 죽계천을 따라 흐르다 멈춘 곳이라 해서 이름이 붙은 곳이 안정면 동촌1리, ‘피끝마을’이다. 정축지변 당시, 난리를 피해 산으로 숨어들었던 사람들이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게 메밀이었고, 살기 위해 만들어 먹던 음식이 메밀묵이었다.
영주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메밀 음식도 있는데, 돼지고기와 김치를 볶아 끓인 찌개에 메밀묵을 넣어 만드는 음식이다. 고난의 시기를 견디던 백성들이 태평성대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아 붙인 이름이 ‘태평초’다.
버릴 것 없는 메밀은 어린 순은 나물로 해 먹고, 열매로는 묵을 쑤어 먹고, 껍질은 베개에 넣어 사용하기 좋았다. 메밀묵을 쑤는 날이면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가 맛있는 간식이 되어주고, 쑤어놓은 메밀묵의 겉이 마르면 묵의 껍질 부위만 잘라내 무쳐 먹기도 했다. 여전히 정축지변 당시 지어진 성황당을 지키며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며 사는 피끝마을 사람들이 모두가 평안한 세상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메밀 밥상을 차려낸다.
■ 부석태를 아니껴? 노래하는 콩할매들의 부석태 이야기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
봉황산 자락에 자리 잡은 부석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아름다운 천년고찰. 영주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땅 위에 뜬 돌이라는 뜻의 ‘부석(浮石)’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다. 오랫동안 부석면 지역에 전해오는 재래콩, ‘부석태’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속담이 부석태를 보고 생겼다고 할 만큼 부석태는 일반 콩보다 크고 굵은 데다 맛도 고소하다. 매년 수확한 콩 중에서 좋은 씨 콩을 받아 부석태 농사를 짓고 있는 소천 1리 주민들에게도 부석태는 최고의 살림 밑천이자 오래된 식재료이다.
부석태는 청국장을 띄우기에 제격인 콩. 콩을 무르게 삶아 볏짚을 덮어 2~3일 정도 띄우면 냄새도 덜 나고, 진도 많이 나와 청국장찌개를 끓이면 그 맛과 영양이 다른 콩과는 비교 불가.
두부를 만들 때도 부석태가 한 수 위란다. 부석태를 불려 맷돌에 갈아 솥에서 끓이고 거르고 다시 간수를 넣고 끓여 거르고 굳히기까지. 정성 없이는 만들기 힘들지만 부석태로 두부를 만들어 놓으면 잔칫날이 따로 없다.
부석태를 농사지어 청국장 띄우고 두부 만들며 살아온 소천1리 주민들은 요즘 ‘콩할매합창단’으로 더 유명하다. 농사지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가사로 만들어 부른 ‘콩 타령’으로 무대에 서기 시작한 지 6년째. 평생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 살던 할매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한 합창단원이 된 것이다.
콩을 삶은 물을 따로 받아 식혀두었다가 조청 대신 무말랭이에 넣어 무치는 ‘무말랭이콩물무침’은 콩할매들의 오랜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콩가루를 풀어 넣고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가운데 김치를 넣고 가만히 기다려 만드는 김치콩국에 담긴 어머니의 그리움까지. 오래 익어 더 깊어진 부석태 장맛처럼 오랜 삶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다시 얻은 이름으로 새로운 추억을 쌓으며 살아가는 ‘노래하는 콩할매’들의 부석태 밥상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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